나는 지금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사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거나, 힘든 일은 모두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내가 가진 힘을 어디에 쏟을 것인지 알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힘을 쏟고 있는지, 아니면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미 충분히 소모적인 일에 필요 이상의 힘까지 쓰고 있는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구분을 잘하지 못했다.
신경을 꺼야 하는 일과 집중해야 하는 일을 알면서도, 신경을 꺼야 할 일을 쉽게 끄지 못했다. 내가 맡은 일이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되니까.
그런 이유로 계속 마음을 쓰고 책임을 졌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불합리한 구조 때문에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바로 떠나지는 못했다.
먹고사는 일이 급했고, 다른 사람의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만두는 순간에도 가능한 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름의 책임을 다하며 버텼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먹고사는 것이 급할수록 내가 정말 하고자 했던 일에 더 많은 힘을 쏟았어야 했다.
겁내지 말고 그곳에 나를 걸어봤어야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용인에서 팜다이닝을 계획했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과 만들고 싶은 공간이 있었다.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했고, 내가 한 일이 내게도 남는 삶을 상상했다.
그런데 정작 내 힘의 상당 부분은 내가 떠나고 싶어 했던 곳을 유지하는 데 쓰였다.
결국 몸이 아파 멈추게 되었고, 내가 계획했던 팜다이닝 당일에도 나가지 못했다. 준비하고 계획한 사람이 정작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나를 계속 소모시키던 일에는 책임을 다하느라 애썼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는 내 몸조차 데려가지 못했다.
그 순간 분명하게 알게 됐다.
나는 열심히 살지 말아야 했던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야 할 곳을 잘못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지켜야 했던 것은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가 정말 살아보고 싶었던 삶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개인적으로 살려고 한다.
내 몸이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내 마음이 어디에서 닳고 있는지, 무엇을 할 때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를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는 책임감이 부족하다거나, 참고 견디는 힘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평가에 나를 맞추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만든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내 몸과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 무엇을 책임지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어디까지 배려하고 어디에서 나를 먼저 지킬지 내 기준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기준대로 살아보고 싶다.
내가 말하는 ‘덜 애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를 소모시키기만 하는 일에는 덜 애쓰고,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일에는 더 깊이 애쓰겠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 골고루 나를 나눠주는 대신, 내게 정말 중요한 곳에 나를 온전히 쓰겠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다 알지 못한다.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무엇을 끝까지 남겨야 하는지 계속 헷갈릴 것이다. 또다시 다른 사람의 기대를 먼저 생각할 수도 있고, 익숙한 책임감 때문에 필요 이상의 일을 떠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그때마다 나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이 일은 나를 오래가게 하는가, 아니면 불필요하게 소모시키는가?
가뿐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기록이다.
일과 돈, 소비와 관계, 자연을 가꾸는 일과 고양이들과 살아가는 일까지. 무엇이 나를 지탱하고 무엇이 나를 무겁게 만드는지 직접 살아보며 확인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나와 비슷하게 모든 일에 마음을 쓰느라 정작 자기 삶에는 힘을 남겨두지 못한 사람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느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뒤로 미뤄온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살 필요는 없다.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남기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자기 힘을 정말 쓰고 싶은 곳에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열심히 살 것이다.
다만 이제는 아무 곳에나 나를 쏟지 않을 것이다.
덜 애쓰고, 더 나답게.
나를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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